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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생가
     
조희룡은 1851년 조정의 예송논쟁에 개입하였다가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 유배조치 되었다. 그는 유배지 오두막집에 ‘만구음관(萬鷗?館)’이라는 편액을 붙이고 그 속에서 칩거하면서 집필과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당호가 있는 그의 그림 19점 중 8점이 이 때 나올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이 있었고 묵죽법(墨竹法)과 괴석도(怪石圖) 그림에 일가를 이룸은 물론 중국 송나라의 대가 ‘곽희’가 만든 산수화 개념조차 수정하여 ‘조선 산수화’ 특유의 감각미를 강조하였다. 유배 시기 조희룡의 기량은 이론의 정립과 기량의 완숙으로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1853년 조희룡은 3년간의 임자도 유배생활을 마감하고 서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후배지도와 은거생활을 계속하다가 1866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러나 조희룡과 김정희가 심어놓은 문인화의 씨앗은 계속 싹을 틔워 나갔다.
조희룡의 후배 화가 ‘유숙’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던 ‘장승업’이 자신의 스승처럼 벽오사(碧梧社)의 여러 세상을 수렴하여 찬란한 절정의 아름다움을 완성해 냈다. 조희룡 매화도의 맥이 ‘유숙’을 거쳐 ‘장승업’의 그림세계로 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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